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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맹사성선생묘 ====== |
|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1645965.jpg?400|맹사성선생묘 }} || |
| | | **종목** | 시도기념물 (1974년 09월 26일 지정)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 |
| | | **시대** | | |
| | | **소유** | 신*** | |
| | | **관리** | 신*** | |
| | | **소재지** | 경기 광주시 직동 산27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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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개 ===== |
| | 조선 세종 때의 재상인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 1360∼1438) 선생의 묘이다. 맹사성은 『태종실록』을 감수하고, 『팔도지리지』를 편찬하였으며, 향악을 정리하고 악기를 만들어 조선 초기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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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묘역은 최근에 정비를 하여 원형이 거의 없어졌는데, 봉분 하단에 직사각형의 둘레석에서 조선 초기 묘제의 흔적이 남아있다. 석물은 옛 것과 현대 것이 섞여 있는데, 봉분의 둘레석·묘표(墓表 ; 무덤 주인의 이름 등을 새긴 비석)·문석인만 옛 것이고 나머지 신 묘표·상석·향로석·동자석인·망주석은 모두 최근에 만든 것이다. 봉분 바로 앞의 묘표는 선생이 세상을 떠난 해인 1438년(세종 20)에 건립한 것이다. 하엽수방부형(荷葉首方趺形 : 뒤집은 연잎을 장식한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인데, 송설체(松雪體 : 원의 서화가인 조맹부의 글씨체로 굳세고 기품이 있는 해서체)의 글씨가 유려하고, 단정하여 주목된다. 하단에 위치한 문석인은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 ; 머리에는 복두를 쓰고, 공복을 입은 문신의 형태)인데, 선각으로 돌출시킨 얼굴과 얕게 양각된 구성요소 등은 15세기 전반기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봉분 정면 오른쪽의 신 묘표는 1959년에 새로 건립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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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묘는 특히 송설체가 유려한 묘표를 감상할 수 있고, 이제는 희귀해진 15세기 전반기의 석물을 살필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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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g>국가유산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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