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마포_최사영_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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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마포_최사영_가옥 [2025/04/02 04:52]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 | 대한민국:국가유산:마포_최사영_가옥 [2025/04/02 04:52] (현재) – 만듦 s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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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마포 최사영 가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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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07년 05월 30일 지정) | |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 | ||
| + | | **시대** | 1906년 | | ||
| + | | **소유** | 김소희 | | ||
| + | | **관리** | 김소희 | | ||
| +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9-2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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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이 고택(古宅)은 대한제국(大韓帝國 : 1897년~1910년) 시기의 관료로서 광업·금융업·창고업 등에 종사하며 부를 축적해 재력가로도 널리 알려진 최사영(崔思永)이 1906년 마포(麻浦)에 건립한 집의 안채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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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건물의 건립자인 최사영은 동 가옥 건립 이전부터 삼개(마포동 236번지)에 거주하면서 지역 유지(有志) 또는 신사(紳士)로서 1920년대 후반까지 생존, 활동하였다. 그는 대한제국 시기에 품계가 정3품까지 올랐고, 우리나라 최초의 국회에 해당하는 중추원(中樞院)의 의관(議官)을 지냈으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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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최사영은 이 집을 1906년 건립하여 1929년까지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건립연대는 건물 종도리에 쓰여 있는 ‘大韓光武十年丙午七月十七日甲時竪柱上樑’이라는 명문(銘文)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최사영 거주 이후 이 집은 최성렬(崔星烈 또는 崔聖烈)에게로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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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와 같이 최사영에 의해 세워진 이 집은『경성부관내지적목록(京城府管內地籍目錄)』및 폐쇄 토지대장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에는 407평(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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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건물은 그 가운데 안채로 추정되는 건물로서 홑처마 팔작지붕의 ‘ㄱ’자형 오량가(五樑架) 목조(木造) 기와집이다. 두벌대 장대석(長臺石) 기단(基壇) 위에 다듬은 네모뿔대 초석(礎石)을 두고 네모기둥〔方柱〕을 세워 오량가(五樑架)로 가구(架構)하였다. 도리가 둥근 형태의 굴도리집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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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건물 평면을 보면 건물 한 가운데에 위치한 정면 2칸, 측면 2칸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향우측으로는 안방을 배치하고 다시 안방의 남쪽으로 꺾어져 정면 2칸, 측면 2칸의 부엌을 배치하였다. 부엌 위에는 다락을 설치했다. 한편 대청마루의 향좌측(向左側)으로는 정면 1칸, 측면 2칸의 건넌방을 배치하고 건넌방 옆으로 정면 1칸, 측면 2칸의 누마루를 들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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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궁궐 건축에서와 같이 대청 연등천장의 서까래 상부를 구조재와 동일한 재질의 골개판으로 막아 누수로 인한 지붕부 목재 훼손이 덜하도록 한 점, 대청마루 앞뒤로 각각 앞퇴와 뒤퇴를 두고 툇마루에 난간을 설치한 점, 그리고 부엌 출입문 용도의 판문과 그 양 옆의 판장벽, 머름과 머름 위 살창, 부엌 위 고창의 넌출창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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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집은 2001년 소유권 변동 과정에서 멸실 위기에 처하게 되자 2001. 11. 27 서울특별시 민속자료로 가지정(假指定),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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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고택은 마포에 위치할 당시부터 이 건물을 포함한 집의 전체 배치형태가 불확실했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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