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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대흥사_서산대사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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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흥사 서산대사유물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40099.jpg?400|대흥사 서산대사유물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1990년 02월 24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간류 / 서예 / 서예 | 
 +| **시대** |  | 
 +| **소유** | 대*** |
 +| **관리** | 대*** |
 +| **소재지** |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구림리) | 
 +
 +===== 소개 =====
 +정조 18년(1794)에 해남 대흥사에 서산대사의 영정이 모셔지는 것을 계기로 정조임금이 「서산대사화상당명」과 그 서문을 직접 써서 대흥사에 내려보낸 것이다. 
 +
 + 대흥사는 서산대사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을 맞아 선조의 특명을 받아 그의 제자인 유정, 처영과 함께 승병을 모집하여 팔도도총섭이 되어 전공을 세우고 입적한 뒤에 서산대사의 의복과 바리때를 모셨던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 후 180여년이 지난 정조 12년(1788)에 대흥사의 천묵, 계홍스님이 서산대사와 유정, 처영의 사우건립을 모색하다 그 이듬해 사우건립 허가와 함께 ‘표충’이라는 사우의 이름을 받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이름과 함께 예조정랑 정기환을 예관으로 파견하였다. 이 유물은 꽃구름무늬채화가 그려진 담황색 비단에 내용이 적혀있고, 끝부분에는 정조의 친필임을 상징하는 ‘홍재’인의 도장이 찍혀 있고, 글의 내용은 서산대사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이다. 
 +
 + 이 「화상당명」만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이 내용은 후대인들이 다시 써서 보관하고 있는 금자병풍과 현판문이 있다. 
 +
 + 해제사유:보물 제1357호 대흥사서산대사유물 로 승격 지정됨에 따라 해제됨.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