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남평문씨본리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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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남평문씨본리세거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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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종목** | 시도민속문화유산 (1975년 12월 30일 지정) | |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 | ||
| + | | **시대** | | | ||
| + | | **소유** | | | ||
| + | | **관리** | 남*** | | ||
| + | | **소재지** | 경북 경북전역달성군 화원읍 본리 401-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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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1975년 12월 30일 대구광역시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 남평문씨(南平文氏) 문중에서 소장·관리하고 있다. 총규모 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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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8세기 초부터 남평문씨 일족이 들어와 터를 잡고 집성촌(集姓村)을 이루었던 곳이다. 1715년에 문재철(文在徹)이 이곳에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하며, 문익점의 18대손인 문경호가 터를 닦았다고도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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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곳은 원래 절이 있던 명당터라 한다. 그 터에 남평문씨 일족이 들어온 후 정전법(井田法)에 따라 구획을 정리하고 터전과 도로를 반듯하게 열어 집을 짓고 세거하였다. 지금은 조선시대 말에 지은 아홉 채의 전통 한옥과 정자 두 채 등 총 11호 54동의 건물이 있다. 주거지의 도로에 면한 부분에는 나지막한 담을 쌓았으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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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곳의 주목할 만한 건물로는 수봉정사(壽峰精舍)와 광거당(廣居堂)·인수문고 (仁壽文庫) 등이 있다. 특히 수봉정사는 대표적인 건물로 세거터 전면에 위치하고 있다. 찾아오는 손님을 맞기도 하고 일족의 모임도 열던 큰 건물이다. 아름다운 정원을 자랑한다. 광거당은 1873년 후은공(後隱公)과 문성공(文成公)이 중국 서적 수천권을 수집하여 세웠다고 한다. 이후 문중의 자제들을 위한 공간으로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양장소로 쓰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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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문중서고인 인수문고는 위의 서적과 규장각 도서를 포함하여 1만 여 권의 도서와 문중의 보물을 보존하던 건물이다. 처음에는 소규모이던 인수문고의 서고를 후에 크게 지었고, 그 이웃에 도서의 열람을 위한 도서열람실도 따로 꾸며 놓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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