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나씨삼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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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나씨삼강문 [2025/04/02 04:54]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나씨삼강문 [2025/04/02 04:54]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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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씨삼강문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62026.jpg?400|나씨삼강문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1984년 02월 29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 
 +| **시대** |  | 
 +| **소유** | 나*** |
 +| **관리** | 나*** |
 +| **소재지** | 전남 나주시남문동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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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나주 나씨인 나사침(1526∼1596)을 비롯하여 3대에 걸친 충신 두 분과 효자 두 분 그리고 열녀 네 분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정려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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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사침은 16세 때 어머니가 병으로 위급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로 봉양하여 위기를 넘기고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의 손자인 나득소(1607∼1640)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아버지인 덕현이 돌아가시자 3년상을 치르고 효를 다해 그의 할아버지와 함께 효자로 정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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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사침의 큰아들인 나덕명(1551∼1610)과 여섯째 아들인 나득소(1607∼?)는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종성지방에 유배되어 있다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워 충신으로 정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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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사침의 넷째 아들인 덕현의 처와 그의 딸인 윤강의 처는 정유재란 때 ?기는 몸이 되자 강에 투신하여 정절을 지켰다. 정묘호란 때 친가가 있는 안주성에 피신해 있다가 성이 함락되자 분신 자살한 나사침의 손자 나수소의 처인 언양 김씨와 그의 손녀인 김집의 처가 열녀로 정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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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7년 도로건설로 원래의 자리에서 약간 뒤로 옮긴 삼강문은 1974년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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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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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