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대한민국:국가유산:김천신리영천이씨정려비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양쪽 이전 판이전 판
대한민국:국가유산:김천신리영천이씨정려비 [2025/04/02 04:51]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김천신리영천이씨정려비 [2025/04/02 04:51] (현재) – 만듦 sh
줄 1: 줄 1:
 +====== 김천신리영천이씨정려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63271.jpg?400|김천신리영천이씨정려비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00년 09월 04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조선 인조(1634) | 
 +| **소유** | 영일정씨 선전공파 |
 +| **관리** | 영일정씨 선전공파 |
 +| **소재지** | 경북 김천시 봉산면 신리 525번지 | 
 +
 +===== 소개 =====
 +정려비는 국가에서 모범이 되는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고자 그 사람의 마을에 세우던 비를 말한다. 이 비는 조선시대 김천 신리 지방 사람인 정유한의 부인 영천이씨의 순절과 절개를 기리고 있다. 
 +
 + 영천이씨는 임진왜란이 터지자 남편이 의병으로 전쟁에 나아가 공을 세울 때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며 가사를 도맡고 있었다. 그러다 왜적들에게 납치되어 강제로 희롱당할 위기에 처하자 품속에 있던 은장도로 가슴을 찔러 자결하였다. 영천이씨가 자결한 지 36년 후에 비를 세우고, ‘절부’라는 칭호를 내리어 사람들의 귀감이 되도록 하였다. 또한 정려비 앞에 우물을 파서 아낙네들에게 이씨부인을 본받도록 하였는데, 그 우물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
 +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는 비는 네모반듯한 받침돌 위로 윗모서리 양 끝을 둥글게 처리한 비몸을 세운 모습이다. 각 표면은 불규칙한 자연돌을 거칠게 다듬어 다소 울퉁불퉁하다. 앞면에는 ‘절부정유한처유인’이라는 글씨와 함께 3줄의 비문을 깊고 선명하게 새겼다.
 +
 + 비의 제작연대는 인조 11년(1633)이며, 고종 29년(1892) 12월 조정에서 정유한에게 통정대부 이조참의라는 벼슬을 내려주고, 영천이씨는 숙부인에 봉하였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