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김제_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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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김제 내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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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종목** | 보물 (2022년 11월 25일 지정) | |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제사유적 / 제사터 | | ||
| + | | **시대** | 조선시대 | | ||
| + | | **소유** | 김제시 | | ||
| + | | **관리** | 김제시 | | ||
| + | | **소재지** | 전라북도 김제시 동헌4길 46-1 (교동)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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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김제 내아」는 1749년경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동헌, 누각(피금각) 과 함께 보존되어 지방관의 일상을 고찰할 수 있는 드문 사례이다. 동헌이 공무를 수행하는 곳인데 반해, 내아는 지방관의 가족들이 생활하는 살림집이므로 동헌, 누각, 내아 건물은 각각 업무공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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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동헌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훼철(毁撤)되었다가 1699년 군수 이세성(李世晟)이 새로 짓고 사칠헌(事七軒)으로 이름 붙인 건물로 지금까지 전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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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피금각(披襟閣)은 군수 정홍명(鄭弘溟)이 1633년에 지은 누각으로 김제 관아에서 병자호란 이전에 지어진 유일한 건축물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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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제 내아는 ‘ㄷ’자형 평면으로 가운데 본채는 5량가 팔작지붕이고 날개채는 3량가의 우진각지붕으로 구성되었다. 상량문 분석 및 대보 부재의 연륜연대 측정 결과 1749년에 건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제 내아는 남향을 한 동헌과 달리 동향으로 지어져 상호 간의 간섭을 줄였다. 동헌 쪽 날개채는 주택의 사랑채와 같이 구성하여 안마당을 보호하면서도 대외적인 관계를 고려했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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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공포는 장식을 생략함으로써 소박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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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제 내아는 모듈을 조립하여 공간을 구성하는 생산방식의 장단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건물은 가로세로 8척 규모의 칸을 조합해서 이루어지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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