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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김복규.김기종효자정려비및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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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복규.김기종효자정려비및정판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39610.jpg?400|김복규.김기종효자정려비및정판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1993년 08월 31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1885년 | 
 +| **소유** | 김해김씨호은공파 |
 +| **관리** | 김해김씨호은공파 |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삼로 1590-20 (임실읍, 효충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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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양세정효각(兩世旌孝閣)은 김해김씨 김복규(金福圭)와 아들 김기종(金箕鍾)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55년(철종 6)에 세운 것이다. 당초 전주시 삼천동 상거마을에 세웠던 것이 1981년 전주 도시계획에 따라 삼천동이 아파트단지로 조성됨에 따라 이곳 임실읍 정월리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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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효각 안에는 효자 김복규 정려비와 효자 김기종 정려비 2기와 정려각 편액에는 안팎으로 효덕연경당(孝德衍慶堂), 양세정효각(兩世旌孝閣)이라 새겨있다. 모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글씨이다. 김기종의 장남 김영곤(金永坤, 1813∼1877)의 비문에 따르면, ‘유언에 따라 완옹(阮翁)에게 비명을 부탁하였다. 완옹의 글은 매우 간결하고 엄숙했다.’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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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자 김복규(金福奎, 1742∼1819)는 효성이 지극하여 16세 때 부친상을 당하기까지 온갖 효를 다하였으며 어느 도사의 감명을 받아 운명 직전의 부친을 여러 차례에 회생시켰으며, 그의 아들 김기종(金箕鍾, 1783∼1850)도 부친의 효심을 이어받아 부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였고, 부모상을 당하자 3년간 시묘살이를 하여 그 애통한 울음소리가 호랑이 울음처럼 산수에 메아리쳐 마을 이름을 「호동(虎洞)」이라 바꾸어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김기종은 초의선사(草衣禪師)가 펴낸 것으로 알려진 <진묵대사유적고>(1852)의 서문을 썼는데, 당시 유가로서 진묵대사의 행적에 감명을 받아 대사의 행적을 수집하고 간행하는데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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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