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금암기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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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금암기적비 [2025/04/02 04:54]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 | 대한민국:국가유산:금암기적비 [2025/04/02 04:54] (현재) – 만듦 s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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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금암기적비 ====== | ||
| + | | {{ http:// | ||
|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1978년 12월 18일 지정) | | ||
| +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
| + | | **시대** | | | ||
| + | | **소유** | SH공사 | | ||
| + | | **관리** | SH공사 | | ||
| + | | **소재지** | 서울 은평구 진관동 45-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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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조선 정조가 명릉(숙종의 묘:현재 사적)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인 영조의 옛 일을 회상하면서 친히 글을 짓고 세운 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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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비문의 내용은 영조가 왕자인 연잉군으로 있을 때 부왕인 숙종의 탄신일을 맞아 명릉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 금암발참(黔巖撥站)에서 쉬게 되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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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잠시 후 덕수천(창릉천)을 건너가는 소도둑을 잡았다는 말에 참장(站將)을 불러놓고 “필시 흉년에 춥고 배가 고파 도둑질을 했을 것이니 선처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튿날 새벽에 궁궐로 돌아가니 세제(世弟)로 책봉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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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후 이 사건은 영조가 50년간 선정을 베푸는 징조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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