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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국새_칙명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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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새 칙명지보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2021082414295500.jpg?400|국새 칙명지보 }} ||
 +| **종목** | 보물 (2021년 08월 24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 **시대** | 1898년(광무2) | 
 +| **소유** | 국유 |
 +| **관리** | [[대한민국: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
 +===== 소개 =====
 +‘국새 칙명지보’는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서 등극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백성에게 알리기 위한 문서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대한제국 국새 10과 중 하나로, 1898년 윤3월 19일에 제작되었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수립하면서 황제의 나라에 걸맞은 새로운 국새를 제작하였다. 그 결과 1897년 9월 17일∼19일 ‘대한국새(大韓國璽)’, ‘황제지새(皇帝之璽)’, ‘황제지보(皇帝之寶)’, ‘칙명지보(勅命之寶)’, ‘제고지보(制誥之寶)’, ‘시명지보(施命之寶)’, ‘명헌태후지보(明憲太后之寶)’, ‘황후지보(皇后之寶)’, ‘황태자보(皇太子寶)’, ‘황태자비지보(皇太子妃之寶)’를 완성하였고, 이 중 3점은 옥보이고, 7점은 금보로 만들었다. 
 +
 + 이번 지정된 ‘국새 칙명지보’는 1897년 9월에 제작된 ‘칙명지보’ 가 아닌 이듬해 1898년 윤3월 19일에 만든 것이다. 1946년 8월 15일 미군정이 총무처에 인계한 환수유물로서, 1954년 6월 28일 총무처에 의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되었다. 이 유물의 제작과정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서 등극하는 과정을 기록한 『대례의궤(大禮儀軌)』에 자세하며, 대한제국의 국새 전반의 현황을 기록한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를 통해서도 그 형태와 재질 및 실제 사용례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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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새 칙명지보’는 용모양의 손잡이[龍鈕]와 보신(寶身)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신은 사방 3치 3푼(9.08×9.12cm)로, 1897년 9월에 제작된 ‘칙명지보’(寶身: 4치 1푼)에 비해 비교적 작다. 손잡이의 모양은 용 형태로서 용뉴(龍鈕)이다. 용머리에는 녹각뿔이 솟아있고 정수리에는 점문이 있다. 코에는 여의두문이 있고, 입을 벌리고 이빨 2개가 아래로 삐져나와 있고, 입 주위로 서기(瑞氣)가 보이며 여의주를 물고 있다. 몸 전체는 비늘이 덮여 있고, 등을 위로 솟구쳐 반원형이다. 서체는 대한제국의 보새와 마찬가지로 소전(小篆)으로, 문자가 균일하고 좌우대칭의 정제된 형태로 나타나 제왕의 냉엄한 권위를 상징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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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새 칙명지보’는 대한제국 국새로서 모든 제작과정을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실제 사용례도 다양하게 파악되는 등 원형을 온전하게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다. 이울러 당시 국가의 운명과 함께 수난을 겪은 역사적 상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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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