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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구례_화엄사_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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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구례_화엄사_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2025/04/02 04:49] – 만듦 sh대한민국:국가유산:구례_화엄사_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2025/04/02 04:50] (현재)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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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national_treasure/2021062314020900.JPG?400|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 ||
 +| **종목** | 국보 (2021년 06월 23일 지정) |
 +|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목조 / 불상 | 
 +| **시대** | 1635년(인조 13) | 
 +| **소유** | 대*** |
 +| **관리** | 대*** |
 +| **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군 | 
 +
 +===== 소개 =====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은 화엄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1635년(인조 13) 조선 후기 유명 조각승인 청헌(淸軒, 淸憲)과 응원(應元), 인균(印均)을 비롯해 이들의 제자들이 협업해 완성한 17세기를 대표하는 불교조각이다. 
 +
 + ‘삼신불’은 법신(法身)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 보신(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 화신(化身) 석가불(釋迦佛)을 말하며 화엄사상에 근원을 둔 도상으로서, 변상도나 사경(寫經), 불화에서는 많이 보이지만, 조각작품으로는 유일해 조선 후기 불교사상사와 조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아 왔다. 
 +
 + 최근에는 복장유물과 관련 기록 등이 발견되면서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의 제작시기와 과정, 후원자, 참여자들의 실체가 더욱 명확하게 밝혀졌다. 즉 이 삼신불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화엄사를 재건(1630∼1636)하면서 대웅전에 봉안하기 위해 1634∼1635년 동안 조성한 것이다. 전국 승려집단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을 역임한 벽암(碧巖) 각성(覺性, 1575∼1660)의 주관 아래 선조(宣祖, 재위 1567∼1608)의 여덟 번째 아들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 1589∼1645) 부부와 선조의 사위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 1588∼1644) 부부, 다수의 왕실 상궁 등 승려 580여명을 포함한 1,320명이 시주자로 참여하였다. 불사를 주관한 벽암 각성은 임진왜란 이후 완주 송광사, 법주사, 화엄사, 쌍계사 등 전란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대사찰의 중창 불사를 주도해 조선 후기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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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신불은 화려한 연꽃을 갖춘 연화대좌와 팔각의 목조대좌에 결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다. 대좌를 포함해 총 3m가 넘는 거대한 규모와 더불어 단순하면서도 선이 굵게 표현된 기법 등 조각솜씨가 중후한 느낌을 더해 준다. 이 삼신불상은 청헌파와 응원ㆍ인규파가 참여한 만큼 표현에서도 각 유파의 조각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근엄한 표정의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상은 청헌파가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는 반면, 부드러운 얼굴에 작은 눈과 두툼한 눈두덩이가 표현된 노사나불상은 응원과 인균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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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승 청헌, 응원, 인균과 제자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여 완성한 기념비적인 대작(大作)으로서, 이는 불사를 주관한 벽암 각성, 의창군 등 왕실의 후원이 합쳐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제작된 목조불상 중 크기가 가장 크고, 조각으로 유일하게 표현된 삼신불(비로자나-노사나-석가) 도상이라는 점에서 불교조각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매우 크고 중요할 뿐 아니라 예술적ㆍ조형적 수준도 당대 불상 중에서 단연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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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