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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괴산_김시양_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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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괴산_김시양_신도비 [2025/04/02 04:53]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괴산_김시양_신도비 [2025/04/02 04:53]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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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산 김시양 신도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60828.jpg?400|괴산 김시양 신도비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08년 01월 04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1670년(현종11년) | 
 +| **소유** | 안동김씨능촌종중 |
 +| **관리** | 안동김씨능촌종중 |
 +| **소재지** |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산 24 | 
 +
 +===== 소개 =====
 +이 신도비는 조선조 인조때의 명신인 荷潭 김시양선생의 신도비로 1670년(현종11년) 8월에 세워졌다. 이 비석의 비문은 당대의 명문장가인 조경(趙絅)이 忠翼公 金時讓의 아들인 김휘(金徽)의 요청으로 지었으며, 글씨와 전자(篆字)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인 이정영(李正英)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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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형적인 조선의 신도비 양식을 잘 갖추고 있는 이 비는 양질의 화강암과 웅장한 규모 그리고 명문장과 명서체 등으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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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형대석과 비신, 가첨석을 갖춘 전형적인 신도비를 최근에 난간석을 돌려 보호하고 있다. 모두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나 암질이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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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형대석은 그 크기가 가로 165㎝, 세로 97㎝, 높이 42㎝이나 비신이나 가첨석과는 다르게 거칠게 다듬어져 있다. 원래의 것이 아니고 현 위치로 옮길 때 변경된 것으로 생각된다.
 +
 +비신(가로 91×높이 231×폭 35㎝)과 가첨석(가로 162×세로 96×높이 70㎝)은 정교하게 다듬고 새겨 흠집 난 곳이 없으며, 지금도 자획이 선명하다.
 +
 +현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500m 앞의 취묵당(醉墨堂) 옆도로(충민사 부근)에 세워졌던 것을 도로폐쇄로 1976년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 하는데, 이전과정에서 귀부나 방형으로 조성되어 있었을 대석의 원형이 망실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荷潭 金時讓 神道碑는 비록 대석은 변형되었으나 가첨석과 비신은 화강암으로 3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전형적인 조선의 신도비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문장과 서체가 뛰어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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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時讓(1581~1643)은 조선의 문신, 자는 子中, 호는 荷潭, 숙종 17년(1691)에 忠翼 諡號를 받았다. 1605년(선조 3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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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1년(광해군 3) 全羅道都事가 되어 지방향시를 주관할 때 임금을 비방하는 시제를 출제했다하여 鍾城에 유배되었다가 1623년 仁祖反正으로 풀려나 禮曹正朗, 兵曹正朗, 修撰, 敎理를 역임하였다. 1624년 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都體察使 李元翼의 從事官으로 활약, 난이 평정된 후 應敎로 文學을 겸임하고 이어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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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9년(인조 7)에 평안도 觀察使 겸 體察府事가 되었다. 1631년 병조판서에 올라 八道都元帥, 四道體察使 등을 겸임하여 斥和를 주장했다. 그 후 江華留守, 호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634년(인조 12)에 同知中樞府事를 거쳐 호조판서, 세자좌부빈객, 강화유수를 거쳐 1641년 「宣祖實錄」을 改修할 때 判中樞府事 겸 判春秋館事로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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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