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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곽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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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암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1645914.jpg?400|곽암 }} ||
 +| **종목** | 시도기념물 (2001년 12월 20일 지정) |
 +| **분류** | 자연유산 / 천연기념물 / 생물과학기념물 / 분포학 | 
 +| **시대** |  | 
 +| **소유** | 공유수면(해수부) |
 +| **관리** | 울산광역시 북구 |
 +| **소재지** | 울산 북구 강동동 판지마을해수면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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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곽암(藿巖)은 미역바위라는 뜻이다. 이곳 판지마을 바다 속에 있는 자연바위이며, ‘양반바위’, ‘박윤웅(朴允雄)바위’ 등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
 +1937년에 간행된 『흥려승람(興麗勝覽)』에 의하면 박윤웅은 나말여초 당시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지방의 호족세력을 정비할 때 협조하였다. 그로 인해 울산은 흥려부로 승격되고, 박윤웅은 그 공훈을 인정받아 정5품 흥려백에 봉해졌다고 한다. ‘흥려’라는 말은 고려(高麗)를 흥성(興盛)하게 하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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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성지』,『울산박씨세보』등에 의하면 그때 박윤웅이 동진(東津)의 땅을 하사받고, 유포에 있는 미역바위 12구를 하사 받아 미역채취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동진은 현재 울산 강동․농소를 말한다.
 +
 +그 후 조선 영조 때 어사 박문수가 주민들의 호소를 듣고 울산박씨 문중 후손이 대대로 소유했던 12구의 바위를 국가에 환수시켰다. 환수 후 3년 내내 미역 흉작이 들자 그 중 1구를 다시 박씨 문중에게 주어 일제 강점기까지 소유권이 이어졌다고 한다. 
 +
 +『흥려승람』 권 1, 인물조에는 어사 박문수가 ‘위대한 공은 영원히 썩지 않는다.’는 뜻으로 바위 면에 “윤웅(允雄)” 두 글자를 새겼다고 하나 지금은 확인할 수 없다. 
 +
 +곽암은 미역 생산과 관계가 있는 곳으로 조선 후기의 경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자연 그대로 만들어진 울산광역시 경관 자원으로 가치가 있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