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곽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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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곽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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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종목** | 시도기념물 (2001년 12월 20일 지정) | | ||
| + | | **분류** | 자연유산 / 천연기념물 / 생물과학기념물 / 분포학 | | ||
| + | | **시대** | | | ||
| + | | **소유** | 공유수면(해수부) | | ||
| + | | **관리** | 울산광역시 북구 | | ||
| + | | **소재지** | 울산 북구 강동동 판지마을해수면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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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곽암(藿巖)은 미역바위라는 뜻이다. 이곳 판지마을 바다 속에 있는 자연바위이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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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37년에 간행된 『흥려승람(興麗勝覽)』에 의하면 박윤웅은 나말여초 당시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지방의 호족세력을 정비할 때 협조하였다. 그로 인해 울산은 흥려부로 승격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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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학성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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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 후 조선 영조 때 어사 박문수가 주민들의 호소를 듣고 울산박씨 문중 후손이 대대로 소유했던 12구의 바위를 국가에 환수시켰다. 환수 후 3년 내내 미역 흉작이 들자 그 중 1구를 다시 박씨 문중에게 주어 일제 강점기까지 소유권이 이어졌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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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흥려승람』 권 1, 인물조에는 어사 박문수가 ‘위대한 공은 영원히 썩지 않는다.’는 뜻으로 바위 면에 “윤웅(允雄)” 두 글자를 새겼다고 하나 지금은 확인할 수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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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곽암은 미역 생산과 관계가 있는 곳으로 조선 후기의 경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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