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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공주소학리효자향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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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소학리효자향덕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39170.jpg?400|공주소학리효자향덕비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1982년 12월 31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통일신라 | 
 +| **소유** | 공주시 |
 +| **관리** | 공주시 |
 +| **소재지** | 충청남도 공주시 소학동 76-3 | 
 +
 +===== 소개 =====
 +한채의 비각 안에 나란히 서 있는 2기의 비로, 향덕의 효행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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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덕은 신라 경덕왕대의 사람으로, 흉년과 전염병으로 인해 부모님이 가난과 병에 시달리자 자신의 살을 베어 봉양하는 등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왕이 그의 효행을 듣고 벼 300석과 집 한채, 토지를 내려 주었으며, 비를 세워 널리 알리도록 하였다. 이후 향덕이 살던 마을을 ‘효자리’라 하였다.
 +
 + 앞에서 보아 오른쪽에 서 있는 것이 더 오래된 비로, 윗부분이 잘려 아랫부분만 남아있다. 비문에 새긴 문구중에 ‘중립(重立:다시 세움)’이라는 글귀가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의 것이긴 하나 경덕왕 때 세운 원래의 비는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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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의 비는 8각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운 모습으로, 비몸의 윗변을 둥글게 다듬어 놓았다. 역시 향덕의 효성을 기리기 위한 것이며, 조선 영조 17년(1741) 관찰사 조영국이 비문을 써서 세워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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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최초로 효행을 표창받은 인물이며,『삼국사기』에 그에 관한 기록이 적혀있어, 효행사적으로 볼 때에도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