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곤지암_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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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곤지암_바위 [2025/04/02 04:53]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 | 대한민국:국가유산:곤지암_바위 [2025/04/02 04:53] (현재) – 만듦 s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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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곤지암 바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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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1985년 06월 28일 지정) | | ||
| + | | **분류** | 자연유산 / 천연기념물 / 문화역사기념물 / 민속 | | ||
| + | | **시대** | | | ||
| + | | **소유** | 부락민 | | ||
| + | | **관리** | 부락민, | ||
| + | | **소재지** |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 곤지암로 72 (곤지암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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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곤지암(昆池岩)’은 화강암질의 바위로 큰 바위와 작은 바위 두 개가 1m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다. 큰 바위 상부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약 400년 된 향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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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곤지암이라는 지명이 생기기 전에는 바위모양이 마치 고양이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묘(猫)바위’라고 불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한성부 판윤(判尹) 겸 삼도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였던 신립(申砬) 장군이 빈약한 병력으로 충주 달천을 뒤에 두고 배수진을 쳐서 적과 대결했으나 패하여 탄금대에서 몰려오는 왜군과 싸우다 강물에 투신하였다. 그의 시신을 광주로 옮겨 장사를 지냈는데 그 후로 묘 바위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고 한다. 누구든 말을 타고 이 앞을 지나려고 하면 말발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아 말에서 내려 걸어야 했다. 그러던 중 어떤 장군이 이 앞을 지나가다가 신립 장군의 묘을 찾아가 ‘왜 오가는 행인을 괴롭히느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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