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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고양흥국사괘불 [2025/04/02 04:52]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 | 대한민국:국가유산:고양흥국사괘불 [2025/04/02 04:52] (현재) – 만듦 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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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고양흥국사괘불 ====== |
|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2020031015232100.jpg?400|고양흥국사괘불 }} || |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03년 09월 08일 지정) | |
| | | **분류** | 유물 / 불교회화 / 괘불화 / 석가불도 | |
| | | **시대** | 1902년 | |
| | | **소유** | 대한불교조계종 흥국사 | |
| | | **관리** | 대한불교조계종 흥국사 | |
| | |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흥국사길 82 (지축동, 흥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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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개 ===== |
| | 이 괘불은 봉은사괘불(1886년)과 같은 삼존도 형식으로, 경기도 내의 남양주 흥국사괘불(1858년), 불암사괘불(1895년)과도 유사하다. 도상은 순·고종 시대에 유행한 삼존불의 간략하고 소형화된 구도이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보살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아난, 가섭과 문수동자, 보현동자가 배치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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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존의 형태는 키형의 광배를 지고 있다. 원만한 얼굴에 큼직한 중앙 계주와 긴 두 귀, 늘여진 팔 등 비현실적이다. 본존과는 달리 보살상·제자상·동자상은 비교적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본존불 앞으로 선 협시들은 어색한 원근법을 표현하고 있다. 화면을 꽉 차게 표시한 점이나 협시들의 얼굴에 살이 빠진 듯한 볼, 가는 눈썹, 아래로 내려다보는 반개된 작은 눈과 꽉 다문 작은 입 등은 20세기 초기의 흐름을 보여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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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살들의 화려한 보관에 정병과 화불이 비교적 큼직하게 묘사하여 대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의 존상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본존과 좌우 협시보살의 크기가 거의 동등하게 묘사하여 삼존불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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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체에 비해 유난히 큰 본존불의 손과 하체가 짧게 묘사된 비현실적인 비례를 감추기 위해서 화려한 장식을 하고 있다. 옷 끝단을 장식하는 국화·모란·연꽃의 변형된 도안적인 꽃무늬가 화려하게 묘사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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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색채의 사용은 원색적인 적색과 녹색, 삼존불의 황색의 얼굴, 두 존자의 밝은 육색, 두 동자의 주홍색의 조화는 비교적 서방 극락정토의 화려함을 나타내려고 했다. 그러나 군청색의 남용으로 화면 전체는 어둡고 경직되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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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괘불은 영산회상도·미륵보살도·비로자나불도 등이 주로 조성되며, 아미타불화는 극히 드문 편이다. 19세기를 중심으로 경기도 일대의 사찰에 소장된 불화는 아미타불화가 많이 제작되는데, 국내·외 정세가 혼란했던 시기 때문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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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편, <한미산흥국사만일회비기>라는 비문과 <봉은본말사지>의 사적기에 의하면 영조가 1707년에 숙빈 최씨의 묘인 소녕원에 가다가 이곳에 행차하여 약사전의 편액을 써 주었다고 하여 왕실과 깊은 연관이 있는 사찰이었다. 이후 고종 15년(1878년)에 주실 완해가 내탕금으로 괘불탱화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 흥국사 괘불의 화기에 의하면, 완해성순으로 보아 왕실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왕실에서는 혼란했던 시기에 왕실의 안녕을 빌고 극락정토에 태어나기를 기원하고자 아미타불을 조성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고종의 성수만세를 기원하고, 황태자과 황태자비의 성수 그리고 순비 엄씨와 영친왕의 안녕을 빌은 것으로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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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g>국가유산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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