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고양북한산서암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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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고양북한산서암사지 ====== | ||
| + | | {{ http:// | ||
|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07년 08월 13일 지정) | |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 ||
| + | | **시대** | | | ||
| + | | **소유** | 산림청 등 | | ||
| + | | **관리** | 산림청 등 | | ||
| + | |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145-35 (북한동)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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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북한산성 수구문지 주변에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거듭된 외침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도성 외곽방어를 위해 천연의 요새인 북한산에 산성을 축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거듭된 논의 속에 1711년(숙종37) 북한산성 축성을 결정하여 그해 4월부터 9월까지 공사가 진행되었다. 축성공사는 훈련도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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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축성 후 산성 방어와 관리를 위해 성내에 승군이 주둔할 수 있는 11개의 사찰이 건립되었다. 이들 사찰에는 군사관련 시설과 함께 승장 11인, 수승 11인, 의승 350인 등을 두었다. 승려들은 각도의 승려들 중에서 차출하여 2개월씩 교대로 산성방어를 담당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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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암사의 승려들은 가까이 있는 수문 일대의 방어를 주로 담당했다. 이러한 역할은 1894년 승군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약 200여 년간 지속되었다. 일제강점기까지 남아있었던 서암사는 1925년 대홍수 때 매몰되어 폐사 되었다고 한다. 발굴 조사 결과 만 여평의 절터에는 대웅전과 산신각, 세심루, 군기고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조선시대의 수파문 기와편과 청화백자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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