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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고령_지산동_32호분_출토_금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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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고령_지산동_32호분_출토_금동관 [2025/04/01 05:55] – 만듦 sh대한민국:국가유산:고령_지산동_32호분_출토_금동관 [2025/04/02 04:52]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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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2019030618324300.jpg?400|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 ||
 +| **종목** | 보물 (2019년 03월 06일 지정) |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금속공예 | 
 +| **시대** | 가야(5세기) | 
 +| **소유** | 국유 |
 +| **관리** | [[대한민국:박물관:국립대구박물관|국립대구박물관]] |
 +| **소재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21 (황금동, 국립대구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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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은 1978년 고령 지산동 32호분에서 출토된 유물로서, 발굴경위와 출토지가 확실하고 함께 출토된 유물에 의해 5세기 대가야시대에 제작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얇은 동판을 두드려 판을 만들고 그 위에 도금하였으며 삼국시대의 일반적인 금동관 형태인 ‘출(出)’자 형식에서 벗어나 중앙의 넓적한 판 위에 X자형의 문양을 점선으로 교차해 새긴 매우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가야시대 금동관은 출토 예가 매우 적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금동관은 유물로서 희소가치가 탁월하며, 특히 현대적 감각을 보여주는 단순․세련된 문양으로 인해 신라 및 백제의 관모(冠帽)에 비해 고유성이 강하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볼 때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은 5~6세기 대가야의 관모공예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보물로서 지정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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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