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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고려직제학양수생처열부이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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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고려직제학양수생처열부이씨려 [2025/04/02 04:48]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고려직제학양수생처열부이씨려 [2025/04/02 04:48]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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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직제학양수생처열부이씨려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61846.jpg?400|고려직제학양수생처열부이씨려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00년 11월 17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 
 +| **시대** | 조선 영조 50년(1774) | 
 +| **소유** | 남원양씨추원재종중 |
 +| **관리** | 순창군 |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5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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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이 정려는 고려 때 직제학을 지낸 양수생의 처 이씨의 지조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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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씨 부인은 남편 양수생이 죽은 후, 당시의 풍습대로 개가를 하라는 부모의 청을 거절하고, 이곳 구미리로 내려와 살면서 아들 양은보를 키워 가문을 잇도록 하였다. 양은보의 후손 중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오게 된 것도 모두 이씨부인의 노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
 + 이씨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 부인의 행실을 알게 된 조선 세조는 1467년에 정려를 내려 후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비와 정려각은 이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조선 영조 50년(1774)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건물로 세웠다.
 +
 + 이 정려에 대해서는 1760년에 간행된 「옥천군지(玉川郡誌)」에 조선후기 성리학자 도암(陶庵) 이재(李縡)가 쓴 ‘열부이씨전(烈婦李氏傳)’이 수록되어 있으며, 정려비는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얘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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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