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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계미동경소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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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계미동경소진첩 [2025/04/02 04:47]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계미동경소진첩 [2025/04/02 04:47]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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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미동경소진첩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36539.jpg?400|계미동경소진첩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10년 06월 17일 지정) |
 +| **분류** | 유물 / 일반회화 / 기록화 / 계회도 | 
 +| **시대** |  | 
 +| **소유** | (학)고려중앙학원 |
 +| **관리** | (학)고려중앙학원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5가 1-16 고려대 중앙도서관 | 
 +
 +===== 소개 =====
 +1703년(숙종 29) 계미년(癸未年)에 태어난 7명의 동갑들이 만든 동경계첩(同庚契帖)이다. 화첩을 펼치면 오른쪽 면은 비어 있고 왼쪽 면에 참판 이익진(李翼鎭, 1703~?), 판서 조영진(趙榮鎭, 1703~1775), 참판 이규채(李奎采, 1703~?), 영의정 한익모(韓翼謨, 1703~?), 부사 송진흠(宋晉欽, 1703~?), 영의정 신만(申晩, 1703~1765), 유언술(兪彦述, 1703~1773) 일곱 명의 반신 초상화가 차례로 각각 그려져 있다. 
 +
 +이어서 이들이 69세이던 1771년(영조 47) 10월 상순에 유언술이 쓴 서문이 4면에 걸쳐 있다. 화면 우측 상단에 ‘참판이공휘익진(參判李公諱翼鎭)’이란 식으로 화상(畵像) 주인공의 관직과 성명을 썼는데 맨 마지막의 초상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그렇지만 서문을 쓴 유언술도 1703년생이므로 맨 마지막 초상화를 그의 것으로 생각된다.
 +
 +유언술의 서문에 의하면 15명의 동갑내기들이 43세가 되던 을축년(1745년)에 처음으로 동경첩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벼슬살이 등으로 세상일에 바쁘게 지내다보니 십 수 년이 흘러 7명이 세상을 뜨고 8명이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소상(小像)을 만들어 작첩(作帖)하기로 했는데 화첩이 완성되기도 전에 또 3명이 세상을 떠서 서문을 쓴 1771년 당시에는 다섯 명만이 생존해 있었다고 한다. 이익진은 1773년까지도 「승정원일기」에서 이름을 찾을 수 있고, 한익모는 1772년 영의정에 올라 지중추부사 조영진, 유언술과 함께 그해 기로소에 들어가 기로당상이 되었다. 따라서 1771년 당시에 이익진, 한익모, 조영진, 유언술 등이 생존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만은 1765년 3월 30일에 사망했으므로 이 화첩은 그 이전부터 제작되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녹색의 무늬 없는 비단 표지에는 흰색 비단 위에 “계미동경소진첩(癸未同庚小眞帖)”이라는 표제를 썼다. 화면의 가장자리는 감색 비단으로 둘렀는데 18세기의 서화첩 장황 형식을 잘 보여준다. 표지를 포함한 장황은 개장의 흔적 없이 원래의 상태를 보여주며 그림도 바탕의 손상이나 채색의 변화 없이 보관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
 +초상화는 녹색(이익진, 송진흠) 혹은 분홍색(나머지 인물) 단령 차림의 좌안8분면으로 그려졌는데 이규채(李奎采) 상(像)만 정면상(正面像)이어서 그가 특별히 정면상을 요구한 것이 아닌가 한다. 갈색선으로 얼굴의 윤곽과 이목구비, 주름을 그리고 그 선을 따라 살짝 운염한 방식은 18세기 초상화 양식과 상통한다. 각 인물의 외형적 특성은 얼굴색, 검버섯이나 주름, 수염 등에서 잘 표현되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된 것이고 안면 윤곽선의 필치, 운염 효과의 강약, 의습선, 사모의 표현, 설채 등이 다소 차이가 있어서 여러 화가가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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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경계회도는 기록에 비해 실제로 남아 있는 작품이 많지 않고, 알려진 17세기의 동경계회도는 화첩보다는 화축이 많고 모두 모임의 광경을 그린 것이서 비교가 된다. 이 <계미동경소진첩>은 계원들 각각의 반신초상화를 내용으로 한 화첩 형식이라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고 중요한 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18세기의 동경계첩으로서 매우 드문 예이며 개개인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점에서 18세기 후반 계첩의 다양한 제작 면모를 알려주는 귀중한 예이다. 개장되거나 내용이 흐트러진 흔적없이 원래의 모습을 잘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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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