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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계룡산삼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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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계룡산삼신당 [2025/04/02 04:48]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계룡산삼신당 [2025/04/02 04:48]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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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룡산삼신당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folklore_material/1658273.jpg?400|계룡산삼신당 }} ||
 +| **종목** | 시도민속문화유산 (2003년 10월 30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제사유적 / 제사터 | 
 +| **시대** | 신도안의 대표적 무속계 신흥종파를 상징하는 건물로 일제시대 조국 독립을 위한 기도처 및 독립운동가의 은신처 | 
 +| **소유** | 계룡대근무지원단 |
 +| **관리** | 계룡대근무지원단 |
 +| **소재지** | 충남 계룡시 신도안면 용동리 565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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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삼신당이 위치한 자리는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한 후 조선을 건국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명당지로서 신라시대에는 왕용암, 고려시대에는 수심대, 조선시대에는 삼신당으로 불리웠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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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9년 평양에서 출생한 정원강은 수도생활을 위해 21세 때인 1910년에 계룡산을 찾았으며, 백옥성 도장에 머물면서 백옥성의 딸과 혼인을 하고, 천단, 정심원·태상전, 산신각, 칠성각, 용궁 등을 연차적으로 건립하여 삼신당 지역을 재정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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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의 삼각산에 기도하러 다니면서 독립운동가들과 인연을 맺고 독립운동을 하면서 조국 독립을 위한 기도와 독립운동가의 은신처로 사용하였고, 정원강은 1943년 6월경에 일경에 의해 체포되어 경북 상주경찰서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서울로 압송도중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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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후, 장자(長子)인 정운복이 대를 이었으나 일제의 강제징집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그의 부인(박영숙)이 주관하여 관리·운영해오다가 1984년 4월 삼신당 지역의 건물을 남겨 놓은 채, 대전시 서구 장안동으로 이전하면서 삼신당 건물 그대로 신축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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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룡대(3군본부)’내 암용추 인근에 위치한 계룡산 삼신당은 1925년에 정원강이 삼신당을 설립하고 독립운동을 하였던 장소로서 1983년의 620사업 시행 시 모든 무속·신흥종교 시설들이 철거되었으나 역사성과 주변 경관 훼손방지를 위해 존치해오고 있는 상태이다. 각종 무속·신흥종교의 요람이었던 신도안의 종교적·향토적·역사적 특성을 간직하고 있는 상징적 장소로서 역사적·민속학적인 측면에서 보존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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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