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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경천군_이해룡_사패지_송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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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경천군_이해룡_사패지_송금비 [2025/04/02 04:50]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경천군_이해룡_사패지_송금비 [2025/04/02 04:50]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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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천군 이해룡 사패지 송금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1721560.jpg?400|경천군 이해룡 사패지 송금비 }} ||
 +| **종목** | 시도기념물 (2014년 02월 20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 
 +| **소유** | 산림청 |
 +| **관리** | 산림청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산25 | 
 +
 +===== 소개 =====
 +<경천군 이해룡 사패지 송금비>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후 일본과의 화평 교섭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여 경천군으로 봉해진 이해룡(李海龍)에게 1614년 광해군이 하사한 토지의 경계 지역 내의 소나무를 무단으로 침범 혹은 벌목하는 것을 금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
 +송금(松禁)이란 역사적으로 국가가 필요로 하는 목재를 확보하기 위하여 소나무의 생장에 적당한 곳을 선정하여 보호하고 벌목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일찍이 고려시대부터 시행되어 조선시대에는 금산(禁山)과 봉산(封山)의 제도가 있어서 소나무숲의 벌목이 엄하게 다스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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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송금비는 그동안 문헌상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조선시대 임업 정책의 실례를 방증하는 유물로서, 이 비를 통해 조선 태조 때부터 고종 때까지 일관되게 시행된, 오늘날의 자연환경 보존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시대 송금 정책의 일면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송금비는 모두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고, 이 비가 송금비로서는 전국적으로 유일한 사례이자 조선시대 임업사에서 중요한 유적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2기가 확인된 바 있으나, 현재 2기 중 1기는 소재 확인 중에 있으며 우선 남아 있는 1기부터 서울특별시기념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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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