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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경주_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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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경주_월성 [2025/04/02 04:53]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경주_월성 [2025/04/02 04:53]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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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월성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1627530.jpg?400|경주 월성 }} ||
 +| **종목** | 사적 (1963년 01월 21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 **시대** | 신라 파사왕 22년( 101) | 
 +| **소유** | 경주시 등 |
 +| **관리** | 경주시 |
 +|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인왕동 387-1번지 | 
 +
 +===== 소개 =====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다.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
 +
 +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전한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
 +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탈해왕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
 + 성의 동·서·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경주 동궁과 월지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 많은 건물터가 남아있으며,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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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