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대한민국:국가유산:경주_신문왕릉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다음 판
이전 판
대한민국:국가유산:경주_신문왕릉 [2025/04/01 05:57] – 만듦 sh대한민국:국가유산:경주_신문왕릉 [2025/04/02 04:53] (현재) – 만듦 sh
줄 1: 줄 1:
 +====== 경주 신문왕릉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1627794.jpg?400|경주 신문왕릉 }} ||
 +| **종목** | 사적 (1969년 08월 27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 **시대** | 통일신라 신문왕(서기 688년경) | 
 +| **소유** | 경주시 등 |
 +| **관리** | 경주시 |
 +|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배반동 453-1번지 | 
 +
 +===== 소개 =====
 +신라 31대 신문왕(재위 681∼692)의 무덤이다.
 +
 + 신문왕은 문무왕의 아들로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한 후 신라 중대 전제왕권을 확고히 하였다. 국립교육기관인 국학을 설립하고, 지방통치를 위해 9주5소경제도를 설치하였고, 고구려·백제·말갈인을 포함시킨 중앙 군사조직인 9서당을 완성하는 등 중앙과 지방의 정치제도를 정비하여 전제왕권을 다졌다.
 +
 + 높이 7.6m, 지름 29.3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둘레돌은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5단으로 쌓았고 44개의 삼각형 받침돌이 둘레돌을 튼튼하게 받치고 있다.
 +
 + 『삼국사기』에 의하면 낭산(狼山) 동쪽에 신문왕을 장사지냈다고 되어있어, 낭산 동쪽 황복사터 아래쪽 12지신상이 남아있는 무너진 왕릉을 신문왕 무덤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br/><b>※(신라신문왕릉 → 경주 신문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