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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경주_망덕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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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경주_망덕사지 [2025/04/02 04:53]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경주_망덕사지 [2025/04/02 04:53]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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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망덕사지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1627513.jpg?400|경주 망덕사지 }} ||
 +| **종목** | 사적 (1963년 01월 21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 
 +| **시대** | 통일신라 신문왕4년(684) | 
 +| **소유** | 경주시 등 |
 +| **관리** | 경주시 |
 +|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배반동 956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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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경주 낭산(狼山)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절터로 사천왕사와 마주하고 있다. 처음 지어진 때는 정확하지 않으나 신라 문무왕 또는 신문왕 때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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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유사』에 의하면 문무왕 19년(679)에 중국 당나라가 침입하자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고자 사천왕사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그 소문이 당나라에 전해지자 당에서는 사신을 파견하여 이를 확인하려 하였는데, 신라에서는 사천왕사 건너편에 이 절을 지어 보여 주었고, 당나라의 덕을 우러른다는 의미에서 망덕사(望德寺)라 하였다고 한다.
 +
 + 경덕왕 14년(755)에 탑이 흔들렸는데, 마침 중국에서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으므로 신라사람들은 당나라를 위해 지은 절이어서 그렇다고 하였다 한다. 또한『삼국유사』에는 절을 지은 후 잔치를 베풀 때 효소왕이 진신석가를 알아보지 못하여 조롱을 당했다는 이야기와, 『반야경』을 베껴쓰다가 죽은 승려 선율이 불경의 완성을 위하여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
 + 현재 절터에는 동·서 목탑터와 그 북쪽으로 금당터와 강당터, 남쪽으로 중문터, 그리고 이를 둘러싼 회랑터가 남아 있어 통일신라시대 전형의 쌍탑 가람배치를 볼 수 있다. 이밖에 중문터 남쪽에 계단터가 잘 남아 있고 그 서쪽으로는 당간지주(보물)가 그대로 남아 있다.
 +
 + 이 절은 황룡사, 사천왕사, 황복사와 함께 경주의 중요한 사찰이었던 곳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
 +<br/><b>※(망덕사지 → 경주 망덕사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