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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경주_남산_창림사지_삼층석탑 [2025/04/01 05:54] – 만듦 sh | 대한민국:국가유산:경주_남산_창림사지_삼층석탑 [2025/04/02 04:51] (현재) – 만듦 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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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경주 남산 창림사지 삼층석탑 ====== |
|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2338466.jpg?400|경주 남산 창림사지 삼층석탑 }} || |
| | | **종목** | 보물 (2015년 03월 09일 지정)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 |
| | | **시대** | 통일신라시대 | |
| | | **소유** | 국유 | |
| | | **관리** | 경주시 | |
| |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6-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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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개 ===== |
| |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는 창림사지는 발굴조사를 통하여 경주 불국사 등 통일신라시대 가람에서 나타나는 층(공간)별 독립된 공간이 창림사에서 확인된 바 있으며 확장과정에서 새로 추가된 영역에 팔부신중을 조각한 석탑, 즉 삼층석탑이 조성 됐다는 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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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탑의 조성시기는 창림사지에 있는 세 개의 석탑 중 하나의 석탑의 사리공 속에서 발견된 《무구정탑원기》를 통해 신라 문성왕(855년 경)때로 추정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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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탑은 2중기단을 조성한 후 3개층 탑신부를 얹은 전형적인 신라 3층석탑의 모습이다. 기단부의 구성은 상, 하 2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부는 통돌에 하대면석과 지석으로 구분하여 치석하였고 면석에 각 돌마다 3개의 탱주를 두었다. 탱주의 개수는 석탑 변천의 가장 가시적인 지표로 통일신라 초기(600년대 말)로 석탑의 조성시기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10개의 석재로 구성된 탑의 하층기단부의 구성은 비슷한 시기에 8개의 석재로 조성된 황복사탑이나 장항리탑보다 고식에 가깝다는 견해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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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히 상부기단 면석에는 8부신중상을 양각하고 1구의 탱주를 두어 매우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남면 1구, 서면 2구, 북면 1구만 남아있고 그 외 면석은 신재로 교체되어 원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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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림사 탑 팔부신중 조각은 규모와 완성도면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팔부신중상이 조각된 예는 안동 법흥사지 전탑, 화엄사 사사자탑, 인용사지탑, 진전사탑 등과 인왕상이 조각된 장항리사지탑, 십이지신과 사천왕상이 조각된 원원사지탑 등과 조각수법을 비교해 볼 때도 기량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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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림사지 삼층석탑은 1976년 복원을 거치며 2, 3층 탑신과 상층 팔부신중상 중 4매, 기단석재 일부가 신재로 교체되고 상륜부가 없어 탑의 원형이 많은 부분 훼손된 상태이나, 창림사지는 신라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지발굴을 통하여 석탑의 위치도 확인된 바 있고 경주 남산에 보존되고 있는 석탑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화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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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부재를 중심으로 탑의 조성수법을 살펴보면 탑의 규모, 기단부의 구성과 상층기단부면석의 팔부신중상의 조각수법 등에서 신라석탑 조형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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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g>국가유산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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