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경주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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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경주읍성 [2025/04/02 04:53]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경주읍성 [2025/04/02 04:53]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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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읍성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1627709.jpg?400|경주읍성 }} ||
 +| **종목** | 사적 (1963년 01월 21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지 | 
 +| **시대** | 고려 우왕 4년 개축 | 
 +| **소유** | 경주시 등 |
 +| **관리** | 경주시 |
 +|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북부동 1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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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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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는 통일신라시대 이후 지방통치의 중심지였다. 주로 중심이 되는 지방도시에 읍성을 쌓았으므로 경주에도 읍성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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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경주읍성의 정확한 축조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쌓은 것으로 알려져 오고 있다. 즉 고려 우왕 때 개축했다는 기록과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에 왜군에게 이 성을 빼앗겼을 때 당시 이장손이 만든 일종의 포인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여 다시 찾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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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조선 시대 세종, 선조, 영조, 고종에 이르기까지 경주 읍성에 많은 증․개축 과정과 내․외부의 구조 변경이 있었음을 문헌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문종실록(文宗實錄)』에 따르면 문종 원년(1451년)에 둘레 4,075척(약 1,904m), 높이 11척 6촌(약 5.4m) 등 비교적 정확한 성곽(城廓) 제원과 구체적인 구조가 잘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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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읍성의 성문은 동서남북에 향일문, 망미문, 징례문, 공진문의 4대문이 있어 이들 문을 통해 출입하였다. 특히 남문인 징례문에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종각에 걸려있는 신라 성덕대왕 신종이 매달려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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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읍성은 경주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와 이후 대부분 헐려나가고 동벽만 약 50m 정도만 옛 모습을 남기고 있었다. 현재 경주읍성의 옛 모습을 찾기 위하여 2009년 “경주읍성 정비복원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2018년 동성벽(324m), 동문(향일문) 복원 및 주변 탐방로 정비를 완료하고, 앞으로 주변의 노후 불량주택을 매입 정비와 북쪽 성벽 등의 복원정비를 추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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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