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대한민국:국가유산:경산지초고본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다음 판
이전 판
대한민국:국가유산:경산지초고본 [2025/04/01 06:00] – 만듦 sh대한민국:국가유산:경산지초고본 [2025/04/02 04:48] (현재) – 만듦 sh
줄 1: 줄 1:
 +====== 경산지초고본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41131.jpg?400|경산지초고본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05년 05월 23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 필사본 / 고본 | 
 +| **시대** | 조선 | 
 +| **소유** | 도*** |
 +| **관리** | 도*** |
 +| **소재지** | 경상북도  성주군 | 
 +
 +===== 소개 =====
 +경산지초고본은 이면에 기록이 있는 용지에 필사(筆寫)된 성주의 읍지이다. 간본(刊本)과 비교해 보았을 때 서문(序文)이 쓰여지지 않은 상태이고 내용서술 중간 중간에 첨삭한 부분이 많은 등 완료되지 않은 초고단계의 사본(寫本)이다. 내용의 체제는『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편찬체제를 모방하였으나 거기에 없는 각리(各里)와 총담(叢談)이 상세하게 되어있다. 책의 표지는 경산지 본초(本草)라 쓰여져 있고, 표제지(標題紙)에는 성산지(星山志)라 쓰여져 있다. 가로 24㎝, 세로 19㎝의 크기에 저지(楮紙)로 되어 있으며, 행서체(行書體)에 행수(行數)가 14~20행으로 일정하지 않으며, 모두 123장으로 되어 있다. 
 +
 +『경산지』의 편찬은 1차로 1635년(인조 13)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이 발의해서 시작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였으며, 이후 2차로 낙촌(洛村) 이도장(李道長)에 의해 편찬이 시도되었고, 그의 아들인 귀암(歸巖) 이원정(李元禎)에 의해 완성되었다. 따라서 본 초고본은 이원정에 의해 필사된 것이며, 목판본 서문의 년기(年紀)가 1677년(숙종 3)이므로 그 이전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이 책은 완료되지 않은 초고단계의 사본(寫本)이나, 이원정의 ‘친필 초고본’으로서 성주의 읍지인 경산지 편찬의 과정과 목판본에 누락된 내용의 보완, 성주․칠곡지역의 지방사연구에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중요한 사료이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