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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강화_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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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강화_충렬사 [2025/04/02 04:53]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강화_충렬사 [2025/04/02 04:53]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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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 충렬사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37043.jpg?400|강화 충렬사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1995년 03월 02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민간신앙 / 기타 | 
 +| **시대** |  | 
 +| **소유** | 충렬사 |
 +| **관리** | 충렬사 |
 +|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충렬사로 232 (선원면) | 
 +
 +===== 소개 =====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선행리에 위치한 충렬사는 김상용 선생을 비롯한 병자호란과 신미양요 때 나라를 지키다 순절한 충신 29명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1641년(인조 19)에 건립하여 현충사(顯忠祠)라 부르다가 1658년(효종 9)에 국왕으로부터 충렬사란 이름을 받아 강화유수 허휘가 충렬사로 이름을 바꿨다. 김상용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왕실의 신주를 받들고 빈궁·원손을 수행해 강화도에 피난했다가 이듬 해 성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南門樓)에 있던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순절하였다. 충렬사를 건립할 당시에는 모두 7명을 배향하였으나, 이후 황선신과 강흥업이 추향되어 9명의 위패가 모셔졌고 그 후 충렬사 비기가 건립되었다. 이후 신미양요 당시 미군에 맞서 싸운 충신까지 배향하여 현재 모두 28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충렬사는 교육공간인 명륜당(明倫堂)과 동·서재는 없어지고, 현존 건물로는 한식목조 맞배지붕으로 된 14평의 사당(祠堂)과, 16평의 수직방(守直房), 14평의 전사청(典祀廳), 비각(碑閣), 외삼문(外三門) 등이 있으며, 1977년에 보수 정화하여 현재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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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