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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강화_갑곶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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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강화_갑곶돈 [2025/04/01 05:57] – 만듦 sh대한민국:국가유산:강화_갑곶돈 [2025/04/02 04:54]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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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 갑곶돈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1625290.jpg?400|강화 갑곶돈 }} ||
 +| **종목** | 사적 (1984년 08월 13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시설 | 
 +| **시대** | 조선시대 | 
 +| **소유** | 강화군 등 |
 +| **관리** | 강화군 |
 +|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 1020번지 외 | 
 +
 +===== 소개 =====
 +돈대는 작은 규모의 보루를 만들고 대포를 배치하여 지키는 곳이다.
 +
 + 갑곶돈은 고려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고와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대포 8문이 배치된 포대이다.
 +
 + 삼국시대 강화를 갑비고차(甲比古次)라 부른데서 갑곶이라 이름이 전해오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고려 때 몽고군이 이곳을 건너려고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우리 군사들이 갑옷만 벗어서 바다를 메워도 건너갈 수 있을 텐데’라 한탄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전설도 있다.
 +
 + 조선 1644년 강화의 요충지마다 군대 주둔지를 설치할 때, 제물진에 소속된 돈대로서 1679년에 완성되었다. 고종 3년(1866) 9월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극동함대가 6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상륙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0월에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은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게 패하여 달아났다.
 +
 + 1977년에 옛터에 새로이 옛모습을 되살려 보수, 복원이 이루어졌다. 지금 돈대 안에 전시된 대포는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이다.
 +
 +<br/><b>※(갑곶돈 → 강화 갑곶돈)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b>
 +
 +{{tag>국가유산 문화재}}